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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타케
영산으로 숭상되어온 산. 수련자들의 수련장소이기도 하다. 일본과 대륙계의 고산식물이 혼재하는 원시림이 산 정상까지 분포되어 있어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표고 554m
대마 크린파크
쓰시마 특산물인 가리비 모양의 지붕을 얻은 야외 무대, 쓰시마 미니어쳐, 전망대, 테니스 코트, 대형 미끄럼틀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야외 잔디밭에서는 매년 친구음악제가 열리고 있으며, 무대 뒤편에는 최근 정비한 인공 모래 해수욕장과 샤워실, 탈의실 등이 완비되어 있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만제키바시
이 다리는 일본이 자랑하는 러일전쟁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쓰시마 해전"의 대승을 가져다준 아주 의미 있는 다리이다.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의 틈바구니에는 조선의 우선권이 중심에 있었다.
러일 전쟁의 기록을 살펴보면 1904년 2월 4일 일본은 대(對)러시아 개전(開戰),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고, 한편 뤼순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어 10일 러·일 양국으로부터 선전 포고되었다. 서전에서 일본군은 한국을 제압하고, 한국에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강요해 유리한 전략체제를 확립하였다.
4월 하순 한국에 상륙, 북상한 일본 제1군은 5월 초 압록강 연안에서 러시아군과 충돌하여 격파했고, 같은 달 랴오둥반도[遼東半島]에 상륙한 제2군은 난산[南山] ·다롄[大連]을 점령하고 뤼순을 고립시켰다. 다시 6월에는 만주군 일본총사령부를 설치하고 15개 사단을 동원하였다. 8월 랴오양[遼陽] 부근에서 양국군이 첫번째 대규모적인 접전을 벌였고, 10월의 사허후이전투[沙河會戰鬪], 1905년 1월의 헤이거우타이전[黑溝臺戰] 등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고전 끝에 모두 승리하였다.

한편 뤼순의 러시아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을 꾀하였으나, 8월 황해에서 일본 해군의 총공격을 받고 항구 안에 봉쇄당하였다. 뤼순 공략을 맡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제3군은 여러 차례에 걸친 203고지 공격으로 많은 손실을 보았지만 1905년 1월 드디어 공략에 성공하였다. 유럽으로부터 지원군을 얻은 크로파트킹 지휘하의 러시아군 32만과 오야마 이와오[大山嚴]가 이끄는 일본군 25만은 3월에 펑톈[奉天:현 瀋陽]에서 회전(會戰), 러시아군이 패퇴하였으나 일본군도 사상자가 7만에 이르는 큰 손실을 보았다. 한편 러시아는 육전(陸戰)에서의 패배를 해전에서 만회하려고 로제스트벤스키 지휘하의 발틱함대를 회항시켜 5월 27,28일 대한해협에서 대해전을 전개하였으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에 격파되어 전멸하였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은 대마도 아소만에 미리 함정을 대기시켜 발틱함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으며 시간이 촉박한 발틱함대가 최 단거리인 쓰시마를 통과하게 되자 이를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둔 것이다.
만제끼다리는 대마도에 건설된 인공적인 운하 위에 설치한 다리로서 1904년 완공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총 3회에 걸쳐 보수공사를 하였다. 지금의 다리는 처음보다 약 10M 정도 이동된 자리이며 주민들이 배를 운항할 때 섬을 한바퀴 돌아가는 불편을 없애고 군함의 출입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든 다리이다.
아소 베이파크
전체 면적 56.1ha의 자연공원으로, 사계절의 모든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봄에는 현해 진달래, 동백꽃 등이 피며, 여름에는 연꽃 공원의 수면 위로 연꽃을 볼 수 있으며, 가을에는 국화와 코스모스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레저 시설로는 텐트 옆에 주차가 가능 한 캠프장(연중 사용 가능), 상설 캠프장(7,8월),카누(7,8월), 퍼팅 골프, 다목적 광장, 전망대, 산책로 등이 정비되어 있어, 많은 이용객들로 붐빈다.